수학이슈

다시 한 번, 중학생 고등과정 선행에 대하여

miruza 2019. 10. 20. 20:29

학령인구가 줄어도 명문대 입학을 위한 경쟁은 더 치열해진 느낌입니다.

중학생 중심의 고등과정 선행이 초등학생으로 내려와서 고등학교 전 과정을 고교 입학 전까지 몇 회독씩 마스터해야한다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 본인이나 그 부모님들이 주로 하는 말들이

"중학교 때 선행을 안 해서 수학을 잘 하기가 힘들다. 중학교 때 엄청 해서 부동의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친구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고등과정 선행을  미리 안 해 놓았으니 늦었다."

맞는 말이긴 합니다. 고등학교 때 안정적인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학생들 중에는 중학교 때 고등과정 선행을 거의 마스터한 학생들이 대부분입니다. 거기에 소수의 학생들이 현행 가까운 진도를 유지하면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과정을 접해 몇회독씩 하고 테스트에서도 늘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학생들이 고등학교 와서 못할 리가 만무합니다.

그런데 몇 가지 전제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첫째, 그 학생들은 몇 년 이른 선행을 해도 수업 내용을 비교적 잘 알아듣고 숙제를 하는 데도 큰 무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렇지 않은 사실상 대부분의 학생들은 선행 진도 자체가 고문에 가까우며 고등학교 가서야 그 내용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본인에게 맞지 않는 선행은 공부를 제대로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감을 익히지 못한 채 대충대충 알아듣고 문제 푸는 것을 수학 공부라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수학 자체가 고통으로만 다가오게 만들기도 합니다. 오히려 중학교 때 엄청나게 열심히는 안 했더라도 수학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꾸준히 공부를 해왔다면 금방 따라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중학교 때 선행을 잘 못한 것만을 고등학교 때 따라가기 힘든 것의 원인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특히 강남권 내신처럼 45분만에 풀기에는 문제수가 너무 많고 100점 방지용 변칙 문제가 많은 시험의 경우, 기본적인 내용을 안다고 하더라도 다시 배워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사교육을 시킬 때는 철저히 나 중심, 내 자녀 중심의 마인드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한 번을 배워도, 나중에 또 반복해야 하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문제로 최대한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가르쳐본 학생들 중에는 아예 그 진도를 나갈 수준이 안 되는데도 이미 2-3회 돌렸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며 오는 학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시 가르칠 때 거의 처음 가르치는 것처럼 일일이 다 이해시켜야 했습니다.  난이도를 더 낮춰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경우는 결과적으로는 제대로 이해하면서 차근차근 진도 나간 경우보다 훨씬 더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리 다그쳐가며 진도를 나갔더라도 돌아돌아 그게 그거일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몇 회독을 하든, 언제 접하든, 결국은 수능에서 만납니다. 영재고 수준이 아니라면 고급수학을 배울 것도 아닙니다. 그냥 몇 회독이 아니라 제대로 몇 회독이 중요한데, 스피디한 진도열차에 너도나도 올라타서 아이들이 사실상 고통받고 수학에 흥미를 잃거나, 제대로 수학을 풀면서 쌓아가는 경험을 쌓지 못하게 됩니다.

또, 비교적 수학적 감각이 좋고 성실해서 빠른 선행에 잘 적응했다고 평가되는 학생들도, 자세히 보면 그 단원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 그래서 그 문제를 이해해야만 심화 문제로의 길이 열리는 문제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핵심 심화 문제들은 여러 번 알려주고 문답을 주고받아야 이해할 수 있는데, 최소 2-3년 이상의 선행이다보니 이해하기 벅차하고 스피디한 진도로 인해 깊게 생각할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너무 지치지 않게 좀더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는 수업이 중요한데, 그렇게 되면 진도가 늘어져서 친구들에게 뒤쳐졌다고 생각하여 다시 빠른 선행을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진도가 늦으니 우수한 학생들이 있는 반에는 들어가기 힘들게 되어 다지는 수업을 했던 학원이나 강사를 원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이해하며 한장 한장 넘기는 습관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저학년의 시기에 그런 습관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런 습관과 힘과 안목을 기르기 위해 다소 진도가 지체되어 보이지만 다지는 기간이 매우 중요합니다.

둘째, 내(내 자녀)가 그 수업에 적응하고 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수학은 쌓아올리는 학문입니다.  한 번 진도를 놓치면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에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일시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1회성 과외든 클리닉이든 담당선생님께 요청하든 해결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 클래스가 따라가기 벅차다는 판단이 확실히 들 때는 과감히 중단해야 합니다.

못 알아듣는 수업, 속도가 학생보다 더 빠른 수업은 약이 아니라 독입니다. 바닥을 다져야 치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내적인 능력이 형성되게 되면 나중에 더 빨리 치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도가 늘어지고 해이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느낄 경우 담당 강사랑 상의해보고 다른 가능성도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간이 다지는 기간으로 의미 있는 기간일 수 있기 때문에 잘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다른 과목을 희생하고 수학만 올인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특히 고급 언어 독해력은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시기에 형성됩니다. 단순히 국어나 영어 수업이 아니라 아카데믹한 글을 접하고 해석하고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수학만 안 되어 명문대를 가기 힘든 학생은 수학 실력을 올려주기가 비교적 쉬웠고 목표한 대학, 혹은 그보다는 낮더라도 괜찮은 대학에 진학하는 사례를 많이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수학만 잘 하는 학생들은 생각보다 더 낮은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재수를 하더라도 성적을 올리기 매우 힘들었고요. 그만큼 독해력, 사고력은 모든 과목에 걸쳐 필수적인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넷째, 결론적으로 중학교 때 선행을 안했다면 고등학교 때 최상위권을 유지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선행을 했더라도 최상위권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어차피 수능 수준의 난이도 내에서 출제되는 문제여서 시간 나는 대로 이해하고 풀고 반복하고 실전 연습하면 됩니다. 대신 좀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겠지요.

또, 경제적인 이유로 선행을 덜 시켰든, 학생의 거부로 인해 못 시켰든, 수학적 감각이 떨어져서 못 시켰든, 뭔가 고등학교 와서 선행이 늦었다고 생각된다면 다음의 사실을 명심하면 됩니다. 수학 자체의 성취도는 제대로 이해하면서 풀은 시간에 비례한다는 것(수학감이 좋을수록 빨라지기는 하지만요)을 유념하고 내 개인적으로 공부 시간을 더 늘리고 공부의 질을 더 향상시키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현재 초등 중등 학생이라면 나/내 자녀가 할 수 있는 만큼이 얼마인지, 바람직한 진도는 어느 부분인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조금 느슨하더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습관의 형성이 매우 중요합니다.